[중국-북경] 러시아 요리를 먹다

아침부터 모종의 트러블^^이 있었지만 결국 느지막하게 일어나 회사에 갔다. 느지막히 일어났고 그런만큼 회사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호텔에서 회사까지 대략 25분이 걸렸다.

사실 오늘 중국 협력사는 오프라인 이벤트가 있어 직원들 대부분이 이미 현장으로 출근해있어 실제 업무를 진행할 수가 없었다. 결국 이메일로 몇 가지 사항만 확인하고 점심 식사를 하러 나갔다.
통역하시는 분도 안 계셔서 어디에 가서 어떻게 밥을 먹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팀장님께서 아는 곳이 있다면서 앞장서 걷기 시작하셨다. 회사에서 한참을 걸어 러시아 레스토랑(!)에 갔다.

내 지식 한도에서 러시아 레스토랑은, 소설 창룡전에서 하지메가 사촌 여동생에게 러시아 음식을 먹으러 가자는 장면 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게다가 러시아 요리라면 크고 시커먼 '흘레프', 걸쭉한 '카샤'(으응?), 비타민의 거의 유일한 공급처였던 '피클' 그리고 탄약과 연료가 떨어져도 물러나지 않다가 보드카가 떨어졌다면서 후퇴를 건의하던 WW2 시절의 소련군 사단장과 그 휘하 장병들이 사랑하던 러시아의 영혼 '보드카' 이외에는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쓰고서 다시 읽어보니 머리 속 세계관이 꽤나 황폐합니다...(먼눈)

혹시 러시아 요리를 좋아하시냐는 내 물음에 팀장님은 그저 영어로 된 메뉴를 제공하는 몇 안 되는 식당이라 왔을 뿐이라는 지극히 무뚝뚝한 대답을 하셨다-.-a
팀장님은 치킨 커틀렛을 나는 소고기 필레 스테이크와 베이컨을 시켰다. 스프는 뭘로 하시겠냐는 질문에 나는 러시아 식당이니까 당연히 보르시치를 시키려고 했는데, 팀장님께서 예전에 먹어봤는데 정말 이상한 맛이라면서 다른 것을 시키라고 권유하셨다. 그런데 보르시치말고는 버섯 크림 스프 밖에 없어 결국 그걸 두 개 시켰다.
레스토랑 안의 인테리어를 구경하며 팀장님과 소소한 잡담을 나누고 있으려니 스프부터 나왔다. 나는 스프를 한 입 먹고는 곧바로 옆으로 밀어놨다. 잠시 뒤 나온 스테이크는 나이프로 썰어 한 입 먹고는 곧바로 좌절했다.

도대체 원래 러시아 음식 맛이 이런 것인지 아니면 중국인들의 입맛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기름이 너무 많고, 너무 짜다! 베이컨이 짠 것은 그렇다쳐도 크림 스프와 소고기 스테이크가 이렇게 짜서야 어디 먹을 수가 없지 않은가.
그래도 배가 고파서야 움직일 수도 없고, 여기는 중국이라 아무 데서나 빵과 우유같은 것을 사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곁들여진 샐러드를 최대한 활용해서 간신히 다 먹을 수 있었다.

참고로 치킨 커틀렛은 어떠한 양념도 되어있지 않은 그야말로 순수한 닭고기 튀김이었다.


1. 그 이후 나는 최소한 밥을 시켜먹을 수 있을 정도의 중국어를 익혔다:)

2. 북경은 이 출장 이후 가보지 않아 장담할 수 없지만, 상해의 경우 엔간한 규모 이상의 식당이라면 영문 메뉴를 제공한다. 그리고 기본적인 한자 몇 개만 외우면 최소한 어떤 고기를 어떻게 굽거나 튀기거나 끓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3. 중국에서 음식을 사먹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다. 다만 자신이 먹고 있는 음식이 어떤 재료를 가지고 어떤 과정을 통해 제조된 것인지 잘 알지 못하다보니 안 사먹게 되는 것이다. 참고로 중국의 우유는 묘하게 싱겁다.

by 觀鷄者 | 2005/11/01 23:31 | 우당탕 여행기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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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까날 at 2005/11/02 00:29
확실히 상해는 영문 메뉴를 제공하는 편이더군요....
Commented by 피의잉크 at 2005/11/02 02:19
제 경우엔 북경에 갈 때는 다행히도 북경에 유학가있는 아는 동생놈을 이용해먹으면 됩니다;;
먹는 걸로 모험은 무서워서 안하죠;;
Commented by 한쓰 at 2005/11/02 22:12
....우유에 물이라도 탄걸까요...(머엉)
보르시치를 시도해 보면 좋았을 텐데.. 역시 아는 러시아 요리는 그것뿐...(사쿠라대전의 영향인가..-_-)
Commented by Fillia at 2005/11/06 18:50
친구의 아내가 러시아 사람입니다.
러시아 요리라고 얻어먹어 본 것이, 블리니라는 것, 카샤라는 것, 그리고 이름은 기억 못하나 뭔가 버섯이 많이 들어간 볶음밥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다 맛있었어요!! 물론 한국 사람 기준으로 조금 느끼했을 지는 모르겠으나, 지나치게 짠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 중국 요리집이 삐꾸가 아니었나 합니다, ^^;
Commented by 觀鷄者 at 2005/11/12 12:38
까날님// 이제는 북경도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피의잉크님// 그래도 해외 여행에서의 재미가 그런 모험이죠^^a

한쓰님// 제 입맛이 유별난 것일지 몰라도 확실히 싱거웠습니다.

Fillia님// 아무래도 그게 정답인 것일까요^^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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