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만두

0. 하나무라 만게츠의 소설 '울'의 여주인공인 유미에는 천식을 이유로 신을 부정했다.

어느 날의 일이었다. 같은 사무실의 동료분께서 나에게 종교가 있냐고 질문하셨다. 그 질문에 대해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만두 때문에 신의 존재를 믿습니다.
그렇지만 만두 때문에 신을 부정합니다."

그리고 나는 동료분에게 신과 만두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포스트는 예전에 Juperion님께서 예전에 덧글로 요청하신 '만두에 대한 눈물나는 이야기'로, 이 베이스는 동료분에게 한 이야기이다.

1. 어릴 적 저희 집은 가난했고 아니 제가 살던 동네는 모두 가난해서 애들에게 간식을 사주는 집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한참 크는 아이들의 식욕이란 어마어마하죠. 그래서 동네 아주머니들끼리 고민을 하다가 돈을 천원씩 모아 만두를 잔뜩 빚어서 그걸 냉동시켜놓고 아이들이 배고파할 때마다 조금씩 쪄주곤 했습니다. 그래서 한 달마다 돌아가며 만두를 빚는 모임이 있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만두를 좋아해서 그 날만 되면 난리를 피웠는데, 그 날은 바로 옆 집에서 만두를 빚을 때였습니다. 아주머니들의 익숙한 솜씨로 새하얀 만두들이 빚어지는 것을 구경하다, 뭐라도 읽을만한 것이 없는지 책장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쉽게도 엔간한 책들은 놀러올 때마다 읽어서 이제는 새로운 책이 없더군요. 그래도 더 뒤져보니 어린이용 성경 교습서가 나왔습니다.
이거라도 읽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읽고 있는데 그 집의 2살 위 형이 저에게 경고하시더군요.

'목사님이 그 책을 한꺼번에 다 읽으면 벌받는다고 그랬어!'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죠. 그래서 저는 형의 경고를 무시하고 성경 교습서를 계속 읽으면서, 기원전부터 유대인들이 팔레스티나인들에게 저지른 범죄에 대한 지식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 새하얀 만두들이 베보자기를 뒤집어쓰고 찜통에 들어가려는 찰나, 정말 신기하게도 저는 쓰러졌습니다. 원인은 알 수 없는 갑작스런 고열이었고, 굳이 원인을 들자면 성경 교습서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은 지 몇 분 뒤였습니다.

열이 나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워있는데, 그 와중에도 만두 생각이 났습니다. 오늘도 만두를 만들었을텐데... 누군가는 맛있게 먹고 있을텐데... 누군가는 열이 나서 죽을 것같고... 그렇게 열이 나서 신음하는 와중에도 저는 만두만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제 입에 만두를 가져다 대더군요. 안경을 벗은 데다 열이 잔뜩 나고 있어서 누가 주는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만 코끝을 스치는 만두의 향기는 고열에 시달리고 있는 저를 움직이게 해주더군요. 그래서 어미에게 먹이를 갈구하는 아기새처럼 입을 열고 입 앞의 만두를 삼켰습니다.

그런데!

그 만두가!!


틀림없이 입을 앙 다물었음에도 불구하고 제 이는 만두를 씹지 못했습니다. 만두가 입에 들어왔으면 쫄깃하고 도톰한 만두피와 아삭아삭한 김치속과 양이 많지 않아 오히려 그 맛을 잘 느낄 수 있는 돼지고기가 씹혀야 하는데!
그 만두가 마치 공기처럼 사라진 것입니다! 그 만두는 꿈이었을까요?

그 날 저녁 그렇게나 열이 펄펄 끓던 저는 다음 날이 되어서야 일어났고 만두 냄비는 이미 텅 비어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날 이후 저는 자신의 가르침을 무시한 자에게 그가 좋아하는 것을 앗아가는 벌을 내리는 신의 존재를 믿으면서도, 자신의 나와바리 근처에 있는 어린이가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만두를 훔쳐가는 신의 가치를 부정하기 시작했습니다.

2. 여기까지가 저와 종교 그리고 만두에 얽힌 이야깁니다.

그러니까 저는 겨우 책 몇 장 읽었다고 해서 어린 아이의 만두를 훔쳐가는 신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대신 으깬 두부와 당면 그리고 숙주 나물을 듬뿍 넣은 채소 만두의 부처님을 지지하는 바입니다;)

by 觀鷄者 | 2006/01/18 21:01 | 그저 그런 잡담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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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6/01/18 21:0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Sion at 2006/01/18 21:08
존재는 긍정하지만 가치는 부정한다 는 현학적인 이야기를 이렇게나 쉬운 에피소드로 풀어내시다니 과연;ㅁ;)b 전 김치랑 두부가 잔뜩 들어간 만두가 제일 좋더군요*-.-*
Commented by 진씨 at 2006/01/18 21:13
전..어머니가 해주시는 만두가 제일 좋습니다..음..;;
Commented by EIOHLEI at 2006/01/18 21:15
... 먼가 잘 이해할수 없지만
... 만두 만세군요
Commented by Juperion at 2006/01/19 04:02
이 글을 읽는 사람은 재미있겠지만 정작 당사자에게는 '눈물나는 이야기' 라기 보다 '처절했던 이야기' 로군요.
Commented by kunoctus at 2006/01/19 10:15
난해하군요 난해해
Commented by 觀鷄者 at 2006/01/20 00:34
비공개님// 그렇죠. 만두야~

Sion님// 쉽다기 보다 망상과 결부한 잡담이죠^^a

진씨님// 어머니의 손맛이 제일이긴 한데,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보니 이제는 안 해주시네요ㅠ_ㅠ

EIOHLEI님// 일단 만두 만세인 겁니다.

Juperion님// 아직 하나 더 남았습니다. 그건 정말 처절합니다ㅠ_ㅠ

kunoctus님// 제 이야기를 끝까지 들으신 동료분도 비슷한 반응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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