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829 - 체벌에 대한 기억

어릴 때 나는 한국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좋은 나라인 줄 알았다. 첫 번째는 물론 미국;)

그런데 머리가 점점 굵어지면서 한국은 그다지 좋은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좀 더 나이를 먹고 이런 저런 역사책을 읽어가며 비교해보니 한국은 꽤나 우스꽝스런 제 3세계의 전형적인 군사 독재 국가더라. 여기까지였다면 지금의 현실에 그저 절망만 하며 소주나 빨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거기에 머물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그 모습을 바꿔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가 태어난 나라를 대한민국이라 부를 수 있었고, 이 나라의 국민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었다.


이오지마에 올라온 그 포스팅은 그냥저냥 읽을 수 있었는데, 체벌을 긍정해야 한다는 덧글들을 보고 있자니 혈압이 오른다. 나도 맞고 컸으니까 너도 맞아야 잘 큰다고? 나는 그 프로세스를 생생하게 본 적이 있다. 그것도 26개월 동안. 그렇다. 군대에서다.

나는 IMF 시절에 군 생활을 했다. 사회가 어렵던 시절이다보니 자원 입대자가 줄을 서 있었고, 대학생들이 학업을 중단하고 한꺼번에 입대했다. 그렇다보니 동기들의 수가 많아 그 층이 매우 두터웠다.

이등병 시절 그냥 맞았다. 주특기 훈련을 하는데 간부도 공용 화기 운용에 대해 정확히 모른다. 고참들은 맞으며 배운 대로만 때리며 가르친다. 안 뛰어다닌다고 맞고 간부 앞에서 뛰어다닌다고 맞았다.
일병 시절 그냥 맞았다. 휴대성을 높이기 위해 장비 포장을 간소화하면 안 되냐고 건의하면 건방지다고 맞고 대학 다니다온 것을 뻐기냐고 맞았다. 주특기 훈련을 잘 하고 측정을 잘 받아도 포상이 없다. 차라리 광대 차림하고 연대장 앞에서 노래를 잘 하면 포상 휴가증이 쏟아진다.
상병을 달면 안 맞을 줄 알았다. 그 때는 애새끼들 안 때린다고 맞았다. 맞은 게 억울해서 애들 모아놓고 굴리니까 개념없이 보이는 데서 굴린다고 맞았다. 화장실에서 소각장에서 건조장에서 포창고에서 운영창고에서 서로 때리고 서로 맞았다.

상병이 꺾일 때였다. 동기들끼리 모여 의견을 모았다. 손해보는 느낌이 들어도 우리가 끊자. 맞더라도 때리지 말자. 우리는 사람이다. 명색이 고등 교육을 받은 지성인이다. 솔직히 힘들었다. 거친 물줄기를 홀로 막아야 하는 조약돌이 된 기분이었다. 그 때 혼자였으면 포기하고 그냥 때렸을 것이다. 하지만 동기들이 있어 참고 견딜 수 있었다.

고참들이 전역하고 동기들이 병장 계급장을 달면서 우리 대대에 구타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같은 날, 2대대의 동기들은 구타 사건이 드러나면서 동기들 전부가 영창에 들어갔다.


추억과 기억은 다르다. 착각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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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觀鷄者 | 2007/08/29 12:39 | 그저 그런 잡담 | 트랙백 | 덧글(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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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도지비론 at 2007/08/29 12:51
그러고보면 저도 밑에 애들한테 욕안하고 안때린다고 선임들한테 갈굼 좀 당했던 기억이...
Commented by 산왕 at 2007/08/29 12:52
나도 맞았으니 너도 맞아야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정말 있나요? --; 몇 명의 한심한 사람들이 반대의견을 모두 군사독재에 찌든 파쇼로 몰면서 만들어가는 논리가 그런 거라는 느낌입니다.
Commented by 에리카 at 2007/08/29 13:13
옛날 군대는 무척 무서웠군요;;
Commented by 觀鷄者 at 2007/08/29 13:22
도지비론님// 쩝-.-a

산왕님// 해당 ID를 콕 집어드릴 수 없는 점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__) 다만 체벌의 확대 재생산에 대해 군대의 예를 든 저도 문제지만, 파쇼 논리로 바로 넘어가니 대한민국의 군대가 정말 무섭습니다.

에리카님// 더 무서운 얘기해드리자면 이건 10년도 안 된 얘깁니다^^a
Commented by 아레스실버 at 2007/08/29 13:33
더 무서운 이야기 해드릴까요? 지금도 합니다. 중대장 하나가 생각 없으면 그 중대 전체가 날아갑니다. 특히 독립 중대는.
Commented by 스프 at 2007/08/29 13:40
저도 그때들은 이야기로는 저런 식으로 맞은 일이 정말 많더라구요. 그래도 00년도 이후로는 처벌에 관한 제재가 걸렸던 것으로 기억해요. 그래서 기분 나쁠땐 아주 조그만한 돌맹이를 그 사람에게 툭툭 던지더군요.[이건 면회갔다가 직접 본]
Commented by at 2007/08/29 13:57
그럴땐 패도 된다.
맞아야 정신 차린다.
매가 약이다.

저 말에 긍정하는 사람이 있는 한은 아직은 법은 멀고 주먹이 가까운 나라인겝니다.
Commented by 듀란달 at 2007/08/29 16:27
관계자님처럼 심하게 당하지 않았지만 저도 상병 꺾이고 나서 윗고참과 아랫후임들 설득해서 패는거 그만두도록 했습니다.
솔직히 병장달고서 까마득한 아래후임들 깐죽거리는 거 보면 본전생각 나서 분통이 터졌지만, 지금에 와서는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Commented by 觀鷄者 at 2007/08/29 17:12
아레스실버님// 체벌의 효과는 이래저래 즉각적입니다. 때릴 때도 반응이 좋고 그게 드러났을 때도 반응이 좋지요...(먼산)

스프님// 작은 돌을 던진다라... 그 나름대로 무서운 이야기군요.

슈님// 그러고 보니 회장님께서는 주먹으로 때릴 때는 정정하시더니, 법 앞에서는 많이 쇠약해지셨더군요-.-a

듀란달님// 자신이 당한 대로 갚아준다면 끝이 날 수 없죠.
Commented by NOT_DiGITAL at 2007/08/29 18:41
저도 동기들과 '구타를 당했지만, 그걸 물려주지 말자'라고 했던 기수였지요. 사실 짜증나거나 힘들 때도 꽤 많았지만 최소한 제가 있던 중대는 구타가 사라졌죠. 그나저나 해당 아이디를 콕 집어 드릴 수 없는 모씨는 글을 보고 있으면 아주 아스트랄로 날아가던걸요.

NOT DiGITAL
Commented by 행인1 at 2007/08/29 19:15
아무래도 그분은 '구타'가 살아숨쉬는 러시아 군대로 보내드리는게 어떨까 합니다.
Commented by 핀투리키오 at 2007/08/29 21:26
정말 멋진 결심이었네요. 때리면 정신 차린다? 잘 배운다? 단기간에는 그리 보이겠지만, 그렇게 되면 결코 메꿀 수 없는 반목만 생기고........서로 싫어하는 사람들끼리 잘도 목숨 맡기고 싸우겠군요. ㅡ.ㅡ 나 맞았으니 너도 맞아라..이건 뭐 어린애도 아니고...-_-

그나마 저도 군대에 있어서 느끼는 거지만 요즘은 많이 나아지고 있어서 다행이에요. 구타는 안 된다는 인식이 퍼지고는 있음..
Commented by 觀鷄者 at 2007/08/30 00:30
NOT_DiGITAL님// 결국 무언가를 이루려면 혼자가 아닌 여럿의 힘이 필요한 것이지요^^

행인1님//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 의견에는 반대입니다. 지금 원래 포스팅에 연결된 덧글과 포스팅들을 보면 원래 얘기하고 싶었던 주제는 이미 사라지고 그저 말꼬리만 잡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군대 이야기를 반복하면 이것 역시 나름의 폭력이 될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있던 내용을 정리해서 별도의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핀투리키오님// 가장 보수적이라는 군대도 바뀌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여우꼬리 at 2007/09/03 14:42
Commented by 건전유성 at 2007/09/03 18:52
군생활 동안 무지하게 맞고 또 맞았지만, 후임들 때린 적인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러니 고참들 중 또라이들이 무시하고 갈구고, 후임들도 얕보더군요. 물고참이라고나 할까...
안 때린다고 별로 좋을 것 없긴 하더군요. 어흙.
Commented by 행인2 at 2007/09/08 17:06
저도 건전유성님하고 비슷한 케이스이긴 한데..저같은 경우는 하극상이나 대드는꼴은..안참았습니다
바로 뒤짚어 엎었죠.. 사이코로 인식된거 아니었나 모르겠네요...
윗선임들 구타있을때 후임들 감싸주고 대신맞아준적도 있고... 항상 방패막이 되주다가
윗선임들 나가니까 기어오르더라고요..당시 어이가없었음..
Commented by winbee at 2007/09/11 02:12
상병 다니까 IMF가 터져서는 그땐 참 난리 아니었죠 . 신병들이 너무 많이 들어와서 총이 모자라는
괴현상까지 벌어졌습니다.전방 예비사단에 식유가 안들어올 정도에 유격훈련까지 타 부대(사단직할대)
하고 한번에 같이 뛰는 기현상에다가 월급까지 절반으로 잘려서 참 힘들었죠.
사실,그때 군부대 분위기가 그 이전 평소보다 안좋았던 것이 사실이긴 합니다...만

어느날 내무반에서 신병 하나가 다른 고참 여럿에게 구타당한 적이 있었는데 이게 딱걸려서 소대 절반이
군기교육대 끌려간 적이 있었습니다.거기 반성문들 쳐다보면 쇼를 한다 라는 말이 딱 어울렸죠.
그딴 수치를 당할거 모르고 기분내키는대로 구타라...이건 군대 문제 이전에 때리는 인간 문제입니다.

제재를 해도 일낼 인간은 냅니다.치안국가라도 살인은 끊이지 않지요.
원인 제공을 해서 씨를 뿌렸는데 거둘 생각 안했다면 군대가 문제니 뭐니의 문제가 아니죠.
군대 분위기라는게 원래 그렇다 하는건 그저 어줍쟎은 보상심리에 기인한것뿐이죠. 솔직히 얘기해서
군대처럼 폭력방지 제대로 하는 사회가 어디 있습니까.군부대폭행사례 교육부터 아예 만화배포까지
참 셀수가 없었는데 핑클도 아는 국군의 주적은 기억나고 그보다 더 많이 찍힌 군대내 이적(폭력)행위에
대한 만화책들은 본 기억들이 없는건지 원.게다가 폭력방지 카드까지 일일히 나눠주는데가 군대말고
어디 또 있을려나요?사회에서 길거리 경찰들이 일반인들에게 그런거 나눠주면 얼마나 웃길까요?

저도 맞긴 많이 맞았습니다.실제 실전에서 맞은것까지 합치면 참 대단하게 맞았습니다.
그리고 그때 때린 주체들 추억으로 기억나는 인간 한명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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