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놀러오세요 동물의 숲'

비가 내리는 밤. 한 대의 차가 라이트도 켜지 않은 채 산길을 달리고 있다.

"자네 이름은..."

나이트 비전을 착용한 채 운전하던 운전사가 뒷좌석에 구겨진 채 앉아있는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이름? 내 이름은 ㅂ..."

이름을 대려는 찰나, 운전사는 대답을 자르더니 지금 네가 갈 곳에서 지금의 이름을 쓸 필요가 없고 오늘부터 너의 호출 부호는 '빨간코'라고 얘기한다. 그러면서 빨간코 명의의 운전면허증과 이런 저런 서류가 담겨있는 봉투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조직에게서 연락을 받은 너구리가 오늘부터 내가 숨어지낼 집을 소개해주었다. 단, 형님의 약속과 달리 숨어지내는 비용은 절대 공짜가 아니었다. 결국 너구리의 친절한 안내(?)에 따라, 마을의 잡일을 맡아 하나 둘 하기 시작했다. 벤틀리대신 고물 자전거를 타고 평소 즐기던 고급 위스키대신 과일 주스 따위를 마시며 물건을 배달하는 일은 정말 힘들었다. 말마따나 토카레프의 방아쇠를 당기는 근육과 자전거의 브레이크를 당기는 근육은 다른 법.
평소 사용하던 연장들만 내 손에 있다면 이딴 마을 따위 밀라이 마을이 아늑한 휴양지로 보이게 만들어보일 수 있을텐데...

하지만 이런 나의 생각은 금새 헛된 공상임이 밝혀졌다. 어제 나는 배달 지연을 항의하는 원숭이의 멱살을 잡았다가, 단 1분 20초 만에 어릴 때 먹었던 이유식까지 게워내야 했다. 파스와 아스피린을 사러 간 나는 너구리에게서 이 마을은 나와 같이 잠시 속세를 떠나있어야 하는 사람들이 조용히 숨어지내는 곳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SHIT! 진작 얘기해줬어야지!

공소 시효 만료까지 앞으로 14년하고도 9개월이 남았다. 이제 내 소원은 너구리에게 숨어사는 집의 대출금을 완납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PS) 카테고리명에 유의해주시길;)

by 觀鷄者 | 2008/02/10 21:18 | 위험한 망상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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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모모판다 at 2008/02/10 21:24
이제는 희미한 화약 냄새와 피냄새... 소매를 걷으면 살짝 보이는 문신 끄트머리...
정체를 숨기며 하루하루 연명하는... 그야말로 짐승의 숲이네요.
Commented by 레이 at 2008/02/10 21:44
히키코모리 게임 짐승의 숲...
Commented by 구바바 at 2008/02/10 21:59
그 게임이 그런 은유를 담고 있었던거군요(...)
Commented by 措大 at 2008/02/10 22:30
멋집니다 +_+
Commented by 행인1 at 2008/02/10 23:04
오오, 실은 그런 게임이었던 거군요!!!
Commented by 알바트로스K at 2008/02/10 23:46
돈갚아구리 채무의 숲
Commented by at 2008/02/14 00:40
그래도 부실없는 1일 공사에 무이자, 납입기간 무한, 자유 납입, 무독촉인 사채업자는 너구리 뿐입니다.
덤으로 쓰레기까지 매입해 주고 통신판매까지 서비스하는 상인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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