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라면...

퇴근해서 뒹굴거리는데 전화가 왔다. 발신자는 친구 녀석.

"야심한 밤에 무슨 일인지요?"

"카드있냐?"

흠칫.

"이야기가 길어질 것같으니 K모 전화로 아니 미소녀 열어라."

딩동~

이하는 미소녀 대화.

"갑자기 카드는 왜?"

"후르츠 칵테일 DVD 박스 세트 사고 싶어."

"후르츠 바스켓이겠지."

"어. 맞어. 그런데 나는 카드가 없어서 나중에 돈줄테니까 일단 네가 사줘."

예전에는 카드만 만들어도 현장에서 현금 1만원을 줬다. 가입비라는 단어는 국어 사전에 등재되지 않았고 연회비도 없던 황금 시절이 있었다. 그 때 내가 왜 카드를 만들지 않았는지...

그런데 지금은 세상이 바뀌었다. 참고로 내 옆자리 동료분은 예전 회사의 이력이 불분명하다면서 신용 카드 발급이 거부되어 지금도 교통 카드에 충전해서 다닌다.

여하튼 친구가 알려준 쇼핑몰에 들어가 결제를 하려는 순간 '사이버 포뮬러 DVD 박스 세트 이벤트 대할인'이라는 길지만 강렬한 문구가 초속 1,132m로 날아들어와 시신경을 관통해 대뇌피질의 사고 결정 구역을 헤집어버렸다.

응급 복구를 마치고 보니 나는 쇼핑몰에서 로그아웃해있었고, 핸드폰에 문자 메시지가 삐빅대며 날아들어왔다.

'고객님의 1월 13일 결제 금액은...'

오늘 아침 출근하며 편의점에서 사발면을 샀다. 2004년 올해도 점심은 계속 라면이다.

PS) 이 글을 읽는 지인들에게 부탁한다. 내가 죽거든 꼭 화장해주길 바란다. 내 몸의 절반은 방부제로 구성되어있다.

by 觀鷄者 | 2004/01/14 09:28 | 블로그인에서 | 트랙백(2)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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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미궁서고(迷宮書庫) at 2004/01/14 13:01

제목 : 만약 내게 카드가 있었다면
어디선가 일어난 비극 街角の"お待ち"カ-ド (길모퉁이의 "거기 잠깐" 카드) 요즘은 가입 권유하는 아줌마들이 통 안보입니다... 아마 2002년 쯤이었나, 제가 조그마한 모 만화출판사(로 영업자 등록을 해놓고 온갖 묘한 사업을 벌이던 곳)에서 근무하던 무렵. 갑자기 카드가 필요해졌습니다. 내쇼널 지오그래픽스를 정기구독하면 끼워준다던 사진집 세트가 너무 보고 싶어서(별매품이 아니라 따로 살 수도 없었고-_-), 구독 신청을 할 생각이었거든요. 고심 끝에 모 은행에 카드 발급 신청서를 내보았지만, 결국 심사 ......more

Tracked from ダメダメ神殿 [Blog版] at 2004/01/14 15:19

제목 : 정신을 차려보니...
아아악! 나는 죄없어!!! 구정에 홀로 집봐야 하는 운명이 나쁜거야아아! (절규) ... 아무튼 ... 결론은 라면 (爆) * 참조 : 남자라면......more

Commented by 얀군 at 2004/01/14 10:07
ㅇㅇ 방부제 사리가 나오는 것입니까? ^^
Commented by 觀鷄者 at 2004/01/14 10:10
얀군님// 라면 '사리'가 나올 거라는 예측도 있습니다-.-a
Commented by 시대유감 at 2004/01/14 10:23
흠.. 그래서 전 아직까지 카드를 안 만들고 있긴 한데.
저도 만들면 어떤 충동구매를 저지를지 참.
Commented by 나그네 at 2004/01/14 10:36
술값의 압박이.. -.-
Commented by ColoR at 2004/01/14 10:37
제 몸은 70퍼센트의 수분과 30퍼센트의 방부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Commented by 카자마신 at 2004/01/14 10:39
......
Commented by Ranbel at 2004/01/14 11:05
해부하면 '방부제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극명하게 알 수 있는건가요(...)
Commented by forthreich at 2004/01/14 12:59
이해합니다....저는 도시락입니다. 훌쩍.
Commented by 세발님 at 2004/01/14 13:52
예전에 삼성카드가 있었는데 말그대로 '씹어먹'었습니다.
정말로 아그작 아그작 씹어서 입안이 다 찢어지도록 씹어서
뱉어냈습니다. 지금도 필요성은 절실히 느끼지만
20년 정도 수련을 더 해서 세상의 욕심들을 이겨낼 자신이
생긴다면 그때가서 하나 신청해 볼까 하네요..
Commented by 사피윳딘 at 2004/01/14 21:32
으음. 저도 카드가 있습니다만, 절대 한달 10만원 이상은 안 쓰는 주의라.... 하지만, 사고 싶은 것이 많을 때는 못 참는 건 마찬가지에요.
그리고, 제 블로그에 왕림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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