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원 훈련장에서 썰렁한 개그 한 토막

1. 내가 속한 학급 조교는 상병과 일병이었다.
부산 출신의 상병은 사투리가 심하고 성격도 급한데다 군대 특유의 '~니다' 말투까지 같이 사용하다보니 자주 엔간한 사람들은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발음을 하곤 했다. 훈련 이틀째 아침 일찍 일어나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예비군들을 모아놓고 상병은 오늘의 교육 일정과 같은 각종 사항을 전달하고 있었다. 그때 한 예비군이 소리높여 외쳤다.

"야! 살인발음. 너말고 일병이 얘기하면 안 되겠냐? 도통 뭔 소린지 한 마디도 못 알아듣겠어."

우리가 퇴소하는 그 날까지 상병의 별명은 '살인발음'으로 통일되었다. 나는 그 조교와 친하게 지냈는데 불구하고 이름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건 별명이 너무 강해서리라...

2. 내가 속한 학급 조교는 상병과 일병이었다.
일병은 상병과 달리 얼굴도 잘 생겼고 키도 크며 몸도 좋으며 발음도 정확했다. 너무 대조적이다보니 많은 예비군들의 관심을 끌었는데, 급기야 상병이 질투를 했다.

"선배님. 이 애가 사회에서 뭐 했는지 아십니까?"(어렵지만 표준어로 번역 중)

미아리 소재 운명철학관을 운영하는 것이 아닌 이상 그걸 알아맞출 방법은 전무하다. 모두들 고개를 설레설레~

"이 애는 '눈에는 좋은 파장의 빛을, 귀에는 좋은 파장의 음을 입력하여 집중력을 높이는 검고 네모난 박스'의 판매를 촉진하는 CF에 출연했습니다. 즉 방송인이죠."(특정 상품의 홍보를 피하기 위해 어렵지만 풀어 쓰는 중)

문제는 거기에 모인 예비군 모두가 그런 CF가 있었던 것같긴 한데까지는 동의했지만 그 CF에 일병이 출연했는지에 대해서 아무도 확인해주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가 퇴소하는 그 날까지 일병의 별명은 'M* 스**'로 통일되었다. 나는 그 조교와도 역시 친하게 지냈는데 불구하고 이름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건 상병의 질투가 너무 강해서리라...
3. 박격포 훈련을 위해 주특기별로 인원의 재분류를 시작했다. 참고로 한국 육군이 사용하는 박격포는 60mm, 81mm, 4.2inch의 3종류고, 각각 '육십미리', '팔하나', '사쩜이인치'로 불리운다. 우리의 살인발음 상병은 양과 산양을 분리하려는 목양견처럼 주특기 인원들을 좌우로 나누었다. 그런데 우리가 누구인가? 독일 제 3제국의 라스트 바탈리온은 감히 쳐다보지 못하고 북한의 특수 8군단도 무서워하며 소말리아의 미군 레인저들도 두려워하는 동원 예비군이 아닌가! 오전에 파악한 인원보다 한 명이 부족하다. 결국 살인발음 상병은 목청이 터져라 없어진 예비군을 찾기 시작했다.

"팔하나 선배님! 어디 계십니까! 교장으로 곧 이동해야 합니다! 팔하나 선배님! 빨리 나와주십니다!"(어렵지만 표준어로 번역 중)

간신히 구석에 짱박혀 오수를 즐기던 예비군 한 명이 다른 조교에 의해 끌려나왔다.

"팔하나 선배님! 빨리 오십니다!"(어렵지만 표준어로 번역 중)

그때 터진 예비군의 크로스 카운터!

"야! 나 팔 둘인데 왜 자꾸 팔 하나래!"

푹푹 찌는 여름 정말 잠깐 등이 서늘해졌다.

by 觀鷄者 | 2004/08/02 16:39 | 데굴데굴 일상 | 트랙백 | 덧글(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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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프리스티 at 2004/08/02 17:06
.....팔 둘 센스 만세 (...)
Commented by Dirty3 at 2004/08/02 18:27
예비군이 사람 참 짜증나게 하죠. 거기다 요즘은 참 더워서... 저는 주소지를 올해 옮겨서 동원미참으로 분류되어서 저번주에 출근했었습니다. 여름에 군복입고 훈련받는 것.. 참 짜증나더군요.
Commented by kirk_hammett at 2004/08/03 01:01
호호호;;;;
Commented by 산왕 at 2004/08/03 02:10
하고 왔습니다만..뭐, 재미있진 않았죠 ^^;
Commented by 세발님 at 2004/08/03 03:05
'힘들지 않냐?'

'헤헤.. 두시간 있으면 퇴근인데요 뭘....'

예비군 훈련장에서 상근 조교와의 대담중...-_-;
Commented by 地上光輝 at 2004/08/03 03:35
다음 훈련때 개겨볼까...
Commented by 아가페 at 2004/08/03 05:48
요즘 예비군은 좀 빡세더군요. 현역때조차 안했던 야간행군까지 하고..-_-;

81밀리 박격포의 악명(?)은 많이 들었습니다.
Commented by 功名誰復論 at 2004/08/03 06:30
박격포. 삼대 신에게 빌면 명중률이 90퍼센트라 그대가 말했던가.
Commented by presto at 2004/08/03 09:07
푸하하하하하[...]
Commented by 시대유감 at 2004/08/03 09:36
하하하, 재밌군요. ^^;
Commented by deiceed at 2004/08/03 12:25
교육내용으로 예비군한테 깨지는 조교는 불쌍하죠.
(잘못은 교육장교에게 있는 것인데..)
Commented by 觀鷄者 at 2004/08/04 09:43
프리스티님// 동원 예비군의 개그 센스 만세(...)

Dirty3님// 저 역시 동미참이라 다음 달에 하루 더 나가야 합니다. 에구 더워...

kirk_hammett님, presto님, 시대유감님// 하하하~

산왕님// 그래도 그 사이 사이의 잔재미를 찾는 것이 망상의 기본이죠^^

세발님// 조교랑 나란히 같이 퇴근했겠군.

地上光輝님// 조심하세요. 잘못하면 퇴소 조치당해 한 번 더 받아야 합니다.

아가페님// 많이 빡세졌죠. 게다가 내년부터 특단의 조치도 있을거라는 동대장의 경고도 들었습니다.

功名誰復論님// 부처님, 알라님, 예수님을 찾으면 명중률 90%. 부처님, 알라님, 마리아님을 찾으면 명중률 100%지.(믿으면 부시)

deiceed님// 헉! 사실은 위의 이야기말고도 조교 한 명에게 장난을 걸었다가 고참에게 된통 깨지는 것을 보는 통에 엄청나게 미안했었습니다...
Commented by at 2004/08/04 20:07
올해 전역했으니 예비군 훈련받으려면 1년은 남았는데
글읽다 보니 정말 기대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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