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평가하기란

사람들은 곧잘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 보고 타인을 평가하곤 한다. 그런데 그런 것도 제 깜냥이더라. 조금 지난 이야기지만 문득 생각나서 키보드를 타닥 두들겨본다.

얼마 전에 지난 회사에서 미지급된 급여 문제로 노동사무소에서 출석요청서가 날아왔다. 그런 종류의 서류가 얼마나 부담스러운지는 받아보신 분들만 아실 것이다. 회사에는 조심스럽게 얘기를 하고 출석요청서에 쓰여있는 이런 저런 서류 복사본 한 뭉치를 들고 찾아갔다.

어느 정도 각오는 했지만, 노동사무소 내부는 전쟁터였다. 이해 당사자들끼리 싸우는 것만 듣고 그대로 옮겨 적어도 엔간한 통속 소설 한 편이 나오겠다는 생각을 하며 내 상담 시간을 기다렸다. 시간이 되어 담당관 자리 앞에 앉자, 전 회사 사람이 아직 오지 않았다면서 잠시 기다리란다.
기다리면서 주변을 둘러보는데, 단정하게 옷을 차려입고 핸드백을 곱게 모아쥔 채 의자에 앉아계신 할머니 한 분이 눈에 들어왔다. 할머니 같으신 분이 이런 곳에는 무슨 일로 오셨을까나. 주위에서 들려오는 말처럼, 열심히 일을 하시고도 그 몇 푼 안 되는 월급을 못 받아 참다 참다 여기까지 오신 것일까? 마음이 심난하니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때 출입문이 열리면서, 이렇게 표현하면 당사자 이외에도 다른 여성들에게 실례가 되겠지만 누가 봐도 낮에 자고 밤에 음주가무를 하는 차림을 한 젊은 여성-최대한 완곡하게-이 들어왔다. 그 분은 들어오자마자 한 바퀴 둘러보더니 곧바로 할머니 옆 자리에 같이 앉았다. 그렇다면 저 할머니는 므흣한 업소에서 청소와 같은 잡일을 하시는 분이었나? 그렇다면 화려한 분-가능한한 완곡하게-은 므흣한 업소 종사자 혹은 업주?

그렇게 전개되던 내 망상은 그 순간 바로 깨졌다.

그때까지 곱게 앉아계시던 할머님의 입이 열리면서 나도 처음 들어보는 육두문자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저 *가 지금까지 가져간게 얼만데 미수금 운운이야. 이 ** *아. * *** 안 *** ****다.' 등등등...
그에 비해 화려한 옷차림의 여성분은 침착하게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수첩을 꺼내들고서 조심스럽게 시간을 지적하며 '할머니. 제가 일한 시간이 얼만데요. 그때마다 할머니가 얼마는 나중에 주기로 한 거잖아요.' 등등등...

이래저래 시끄러운 사무소였지만 그때만큼은 모두의 시선이 두 분에게 집중되었다.

그 순간과 달리 지금 시점에서 생각해보면 누가 더 나쁜 사람인지에 대해 딱히 평가할 수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할머님이 나쁜 사람일 수도 있고, 의외로 화려한 분께서 해당 직업에 종사한다는 이유만으로 쉽게 평가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그런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잘 대처한 것일 수도 있다. 이렇든 저렇든 사람을 평가하는 일은 정말 어렵다.
첨부하는 그림 역시 외모로만 사람을 평가해선 안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by 觀鷄者 | 2004/09/16 13:25 | 그저 그런 잡담 | 트랙백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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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deiceed at 2004/09/16 15:35
직접 만나서 겪어보기 전엔.. 정말 모르죠.
Commented by Utopia의꿈 at 2004/09/16 17:25
법률상담란에 가보면, "약자를 위한다"는 법의 정신이 얼마나 허상에 쌓인 개념인가를 느낄때가 많습니다. 오히려 경제적. 사회적 약함을 무기로, 사람들을 갈취하는 사람들도 많은 곳이 현 사회이지요.. 하지만 그들을 그토록이나 비열한 인간으로 만든 사회역시 책임을 면치는 못할 것입니다.
Commented by SgtA at 2004/09/16 17:59
진실은 저 너머에......라지만 실제론 진실은 서류에 남는 법입니다.
Commented by 미르 at 2004/09/16 20:07
하..하하... 뭐..전 할머니들 욕하는거 좀봐서...
....그나저나..
..모토코양 큐트하군요.
Commented by Sion at 2004/09/16 20:56
짤방까지 포함해 정말 설득력이 넘치는군요_no
Commented by 산왕 at 2004/09/16 21:30
기록이 진실이다..라고 하는 건 진실을 상대적인 것으로 본 것이군요 --;
Commented by 프리스티 at 2004/09/16 22:04
짤방 때문에 이해가 잘 되는군요 (...)
Commented by Sepiroot at 2004/09/17 18:44
돈문제가 관계된 일에는 사람이 한층 더 과격해지지요(...)
Commented by 마아사 at 2004/09/18 22:28
그림의 설득력 대단합니다!!!
Commented by dududu at 2004/09/20 13:00
할머니가 므흐흣 업주로군요.
Commented by 觀鷄者 at 2004/09/21 09:36
deiceed님// 문제는 직접 만나서 겪어봐도 의뭉스러운 사람들이 있는터라...orz

Utopia의꿈님// 답답할 뿐이죠.

SgtA님// 서류에 남은 진실이 빨리 결제되었으면 합니다. 도대체 그게 얼마냐고...orz

미르님// 누님은 역시 누님입니다.(전혀 딴소리)

Sion님, 프리스티님, 마아사님// 역시 적절한 짤방을 넣으면 설득력이 올라가는군요.

산왕님// 누가 기록하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죠.

Sepiroot님// 사실 저것보다 더 심했습니다...

dududu님// 아마도 그렇겠죠?
Commented by Syx at 2004/09/22 11:58
그래서..-_-)> 어떻게 되신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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